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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변증법(아도르노, 호크하이머) 발췌

by dambi_ 2023.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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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2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

13 '계몽의 지칠 줄 모르는 자기 파괴'(...)

13 승리한 사상이 기꺼이 비판적 요소를 포기하고 단순한 수단이 되어 기존 질서에 봉사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자기 의지와는 반대로 예전에 선택했던 긍정적인 무엇을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변질시키게 된다. 

14 사실을 단순히 확인하거나 상식적으로 그럴듯해야 한다는 한계 내에 엄격히 머물지 않을 경우 인식하는 정신은 사기나 미신에 떨어지기 쉽다는 견해 속에서 사기와 미신이 마음껏 설칠 수 있는 척박한 토양이 마련된다. (...) 이론적 상상력의 차단은 정치적 광기에 길을 활짝 열어준다. 

15 이 계몽 개념 자체가 오늘날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퇴보의 싹을 함유하고 있다.(...) 진리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경직된 '계몽' 자체...

16 현대 문명의 적자가 가지는 불안, 그것은 '사실'을 놓칠 것 같은 불안으로 이 불안은 사회적 일탈에 대한 불안과 직접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 '사실'이나 지배적 사고 방식에 부정적 태도를 취하는 사상을 애매하고 까다로운 허식주의 또는 잘해야 추상적이고 시의성 없는 것이라고 터부시함으로써 '정신'을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에 가두어버린다. 

17 위생적인 공장의 작업 공간, 그리고 이에 속한 모든 것, 또한 국민차나 체육 궁전, 이런 것들이 형이상학을 무자비하게 해체시켜버린다는 것은 별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르나, 사회 전체로 볼 때 이것들 자체가 형이상학이 되어, 그 뒤에 실제적인 불행을 숨기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장막이 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8 신화는 이미 계몽이었따. 그리고 계몽은 신화로 돌아간다. 

19 자기 파괴로의 실제적인 경향이 '합리성' 안에는 처음부터 존재한다.

 

계몽의 개념

21 진보적 사유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해왔다. 

23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법이다. 

25 계산 가능성과 유용성의 척도에 들어맞지 않는 것은 계몽에게는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26 옛날부터 계몽은 신화의 근본 원리를 신인동형론, 즉 주관적인 것을 자연에 투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초자연적인 것, 즉 신령들과 데몬들은 자연 현상에 겁을 먹은 인간의 자화상이라는 것이다. (...) 그러한 형상들은 '주체'로 환원되는 것이다. 

26 계몽은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아예 존재나 사건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계몽의 이상은 세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도출해낼 수 있는 '체계'다.

※아도르노는 '체계'라는 단어에서 전체주의적인 억압과 폭력의 계기를 읽는다.

27 그래서 숫자는 계몽의 경전이 되었다. 

28 '계몽에게는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것, 나아가 결국에는 '하나'로 될 수 없는 것이 가상Schein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근대의 실증주의는 이런 것들을 문학의 영역으로 추방해버린다.(...) 줄기차게 고수되고 있는 것은 신들과 질(質)의 파괴다. 

28 그러나 계몽의 제물이 된 '신화' 자체도 이미 계몽의 산물이었다. (...) 

30 신화는 계몽으로 넘어가며 자연은 단순한 객체의 지위로 떨어진다. 

30 사물은 언제나 동일한 것, 즉 지배의 대상이라는 데에 그 본질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일성'이 자연의 통일성을 구성한다.

33 주술은 학문처럼 목적성을 가지나 그 목적을 객체에 대한 진보된 거리가 아닌 미메시스를 통해 추구한다.

※아도르노의 경우 미메시스는 '객체에의 동화'다. (...)미메시스는 '합리성'의 최초 형태로서 자연에 대한 무력감에서 나온 자연 지배릐 테크닉이다. 이러한 미메시스는 합리성에 의해 점점 대체될 수밖에 없게 된다.

37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자연의 강압을 분쇄하려는 모든 시도는 단지 더욱 깊이 자연의 강압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것이 유럽 문명이 달려온 궤도다. 

37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반복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평준화하는 '추상화' 그리고 추상화가 봉사하는 '산업'의 지배 아래 마침내 '해방된 자'들은 헤겔이 계몽의 결과라고 지칭한 군중이 되었다.

37 추상화의 전제가 되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거리는,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통해 얻는 사물에 대한 거리에서 생겨난다. 

38 사유의 보편성, 즉 개념 영역에 있어서의 지배는 실제적인 지배의 토대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 속에서 질서를 조직하는 법을 배운 자아는 외부에 대해 이런저런 처분을 내리는 자기 중심적 사유와 진리 일반을 동일시하게 된다. 

39 알려지지 않은 것, 낯선 것은 모두 원초적이고 분화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또한 경험계를 초월하는 것이고, 사물의 이미 알려진 속성 외에 사물 속에 있는 '그 이상의 무엇'이다. 

41 미지의 것이 더 이상 없을 때 인간은 공포로부터 면제되었다고 상상한다. 이것이 탈신화화와 계몽의 궤도를 결정한다. 신화가 죽은 것을 산 것과 동일시한다면 계몽은 산 것을 죽은 것과 동일시한다. 계몽은 과격해진 신화적 불안이다. '

43 반복되는 자연이 상징의 핵심이다. 즉 어떤 존재나 과정은 상징으로 기능할 때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영원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43 올림포스 신들의 황당한 연대기라는 수치스런 덮개를 들추면 그 아래에서는 이미 원초적 자연력의 혼합, 압축, 충격에 관한 이론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이론들은 얼마 안 가 과학으로 확립되면서 신화를 환상에 불과한 형상들로 만들어버렸다. 

44 '기호와 형상의 분리'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49 상징이 의미하는 '반복되는 자연'은 갈수록 상징 속에 표현된 항구화된 사회적 억압임이 증명된다.

49 사유 형식 속에 침전된 것은 이러한 '집합성과 지배의 통일체'이지 직접적인 사회적 보편성, 연대감은 아니다.

53 변증법은 형상의 고유한 특성으로부터 그 형상의 허위성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며, 이렇게 함으로써 형상이 갖고 있는 힘을 빼앗아 그 힘을 '진리'에 귀속시킨다.(...)헤겔은 물론 '부정'이라는 전체 과정의 의식적인 결과, 즉 '체계의 총체성'이나 '역사의 총체성'을 결론에 가서는 또다시 절대화함으로써 '금기'를 위반하고는 그 자신 '신화'에 빠지게 되었다.

54 이러한 사정은 단지 진보 사상의 신격화로서의 헤겔 철학뿐만 아니라 계몽 일반, 즉 냉철하게 헤겔과 형이상학 일반으로부터 떨어져나오려하는 계몽 자체에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계몽은 어떤 체계 못지않게 전체주의적이기 때문이다. 계몽의 비진리성은(...)그 진행 과정(=수학적 방법론)이 사전에 이미 결정되에 있다는 데에 있다. 

55 계몽은 '사유를 사유하라'는 고전적 요청(피히테)을 무시했다. (...) 공리에 의한 자기 제한에도 불구하고 수학적 방식은 필수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군림한다.

57 사유를 수학적 장치로 환원하는 것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승인이다. (...)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역사적 인간적 의미를 곰곰이 따져봄으로써 눈앞에 보이는 표피적 현상을 개념을 통해 매개시키는 것, 한마디로 '인식'이라는 행위를 송두리째 포기하는 것이다. 

57 '사실성'만이 정의로 인정되며 인식은 사실성의 단순한 반복으로 제한되고 사유는 단순한 '동어반복'이 된다. 

59 (계몽의) 지배의 대가는 인간이 단순히 지배된 객체들로부터 소외되는 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정신이 물화되면서 사람들 간의 관계나 개개 인간의 자신에 대한 관계도 악령에 사로잡힌다. (...)애니미즘이 사물을 정령화했다면 산업주의는 영혼을 물화한다. 

59 대량 생산과 그것이 만든 문화의 수많은 부로커들에 의해 규범화된 행동 양식은 유일하게 자연스럽고, 품위 있고, 합리적인 양식으로 개인의 뇌리에 박힌다. 그는 단지 사물로서, 정적인 요소로서, 성공 혹은 실패로서 규정될 뿐이다. 

64 서구 문명의 전환기에 새로운 국민들과 계급들이 '신화'를 더욱 결정적으로 배격할 때마다, 자연 자체를 소재로 격하시키고 대상화시킨 결과인 위협적인 정체불명의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애니미즘적인 미신으로 전락해버리면서, 또다시 내적 자연이나 외적 자연의 정복이 삶의 절대적 목표가 되었다. 종국에 가서 자기 유지가 자동적이 된다면 이성은 생산의 관리자로서 그 상속자가 되었지만 이제는 상속권을 박탈당할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폐기 처분될지도 모른다.

65 (오디세이 12장 사이렌과의 만남을 얘기하면서) 자아는 시간의 확고한 질서에 의해 신화에 대처하려 한다. 시간을 삼분하는 도식은, 과거의 위력을 반복될 수 없는 절대적 경계 뒤로 밀어내고는 그 힘을 현재를 살아가는 데 유용한 지식으로 만듦으로써, 현재의 순간을 과거의 위력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다.

66 사이렌은 방금 지나간 과거를 직접 불러냄으로써 그들의 노래에서 들을 수 있는 저항할 수 없는 즐거움을 약속해주지만,(...) 그 대가로 미래를 요구한다. *대처방식 : 노젓는 선원들은 밀랍으로 귀를 봉하고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배에 묶는다. 

67 노동하는 사람은 건강한 몸과 집중된 마음으로 앞만을 보아야 하며 옆에 있는 것은 내버려두어야 한다.

68 그들은 하나로 묶여진 억압자의 삶과 자신들의 삶을 재생산한다. 그러므로 억압자도 자신의 사회적 역할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

69 대표성은 진보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퇴보에 있어서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71 사회적 경제적 학문적 장치가 복잡하고 정교해질수록 육체가 가지고 있는 체험 능력은 점점 빈곤해진다. (...)오늘날 대중의 퇴행은 들을 수 없는 것을 자신의 귀로 듣고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자신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능력의 결핍을 의미한다. 이러한 퇴행은 결국 모든 정복된 신화들을 다시 해체해버리는 새로운 형태의 '현혹'이다.

72 사유란 주인이 임의로 멈추게 할 수는 없는 노예다.

76 스스로 '지배'임을 고백하고 자연 속으로 퇴각하는 결단을 통해 정신은 자신을 바로 자연의 노예로 만드는 지배에의 요구를 분쇄할 수 있다.

78 계몽은 '개별적인 것'을 모두 굴복시킴으로써 무엇인지도 모르는 '전체'가 사물에 대한 지배를 넘어 인간의 존재와 의식에 제멋대로 보복하는 것을 허용했다.(...)진정한 혁명적 실천은 사회가 사유를 경직시키는 수단인 의식 부재 앞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 '이론'에 달려 있다. 혁명의 실현을 의문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혁명이 실현되기 위한 물질적 전제가 아니라 고삐 풀린 '기술'이다.

79 "우리가 실제로 자연 위에 군림하는" 베이컨의 유토피아가 전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된 오늘날, 그가 정복되지 못한 자연의 탓으로 돌린 강압의 본질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지배 자체였다.

 

부연설명 1 오디세우스 또는 신화와 계몽

80 오디세이에 나오는 사이렌 이야기는 '신화'와 '합리적 노동'이 서로 어떻게 뒤엉키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부분뿐 아니라 오디세이 전체가 '계몽의 변증법'에 대한 증거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 신화와 서사시는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서사시는 반신화적임.

81 (아킬레스나 오디세우스 같은) 모험의 주인공은 '시민적 개인'의 원형...

81 모든 민주주의에서 보듯 이 문제(=계몽)에 대한 대중의 자기 착각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인간을 통치하기 편한 왜소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진보'아른 이름하에 추구되었다.

82 니체가 계몽을 지고한 정신의 보편적 운동으로 파악하면서 동시에 계몽은 이러한 운동의 완성자로서 삶과는 적대적인 허무주의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인식...

 

문화산업 :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

183 기술과 사회의 분화와 전문화가 심화됨으로써 문화적 혼란이 초래되었다는 사회학적 견해는 매일매일 거짓임이 드러나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문화는 모든 것을 동질화시키기 때문이다. 

184 대우주와 소우주의 가시적 통일성은 개개의 인간들이 그들 문화의 대표자인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과 특수의 잘못된 동일성이다. (...) 규격품은 소비자가 원해서 나왔다는 주앙은 문화 산업의 조종과 이러한 조종의 부메랑 효과인 수요가 만드는 순환 고리로서 이러한 순환 고리 속에서 체계의 통일성은 사실 점점 촘촘해지고 있다.

186 청중이 문화 산업의 체계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체계의 일부이지 체계를 면병하기 위한 구실은 아니다.

187 문화 산업의 물샐틈없는 통일성은 정치의 영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짐작게 한다. (...)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무엇인가가 마련되어 있지만 그것은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차이는 오히려 강조되고 선전된다. 대중에게는 가계 각층을 위해 다양한 질의 대량 생산물이 제공되지만 그것은 양화Quantifizierung의 법칙을 더욱 완벽하게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다.

188 (자동차와 영화가 각각 얼마나 동질적인지를 얘기하면서) 가치의 유일한 척도는 얼마나 이목을 끄는가 또는 얼마나 포장을 잘하는가에 달려 있다. 기술 매체 또한 서로간의 차이가 희석되어 끊임없는 획일화가 강요된다. (...)

188 (...)감각적 요소들은 원칙적으로 동일한 기술적 작업 과정 속에서 생산되며 이러한 작업 과정의 통일성은 곧 사회 현실의 본질을 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189 사람들의 여가 시간은 문화 산업이 제공하는 획일적 생산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 소비자가 직접 분류할 무엇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생산자들이 소비자를 위해 그러한 분류를 다 끝내놓았기 때문이다.

191 *각 문화의 전체적 맥락보다 특이한 부분들이 강조되면서 구조에서 오는 미학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전체는 부분들과의 필연적 연관성을 상실 (...)

192 (현실과 유사한 영화, 극작품은)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193 문화 산업은 하자 없는 규격품을 만들 듯이 인간들을 재생산하려 든다.

195 문화 산업의 여러 분야에 널려 있는 '자연스러움'의 관례가 부과하는 의무 조항들을 몇 분 내에 충족시킬 수 있느가라는 진기한 능력이 문화 산업 종사자들의 유능함을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196 다루기 힘든 소재에 대해 더 이상 실험해볼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문화 산업의 양식은 동시에 양식의 부정이다. 

197 위대한 예술가들이란 결코 매끈하고 완전한 양식을 구현한 사람들이 아니라 카오스적인 고통의 표현에 대항하기 위한 강인함으로서, 즉 양식을 '부정적 진리'로 작품 속에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 쇤베르크나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예술가들은 양식에 대한 불신감을 품고 있으며 결정적 국면에서는 양식보다 '사물의 논리'를 따른다.

198 위대한 예술 작품의 양식이 옛날부터 자기부정에까지 이르는 좌절에 스스로를 노출시킨다면 열등한 예술 작품은 '동일성'에 대한 대용물로서 다른 작품과 유사성에 매달린다.

199 양식에 숨겨져 있는 비밀은 바로 사회적 위계 질서에 대한 순종이다. *통일된 문화 양식은 낮시간의 노동과 노동사이의 시간에 '노동'처럼 이루어진다.

200 *시장경제에 기반한 미국의 문화 산업과 달리 유럽의 문화는 과거의 절대주의에서 기인하였기 때문에 수요 공급의 법칙에 저항하는 것이 가능했다.예술가들은 비록 왕과 제후의 후원을 받았지만 그들의 어두운 면을 파헤칠 수 있었다. 반면, 오늘날 예술가들은 비합법적 주인들(=시장경제)에게 복종해야하만 한다. 예술가도 먹고 살아야하니까...

202 순응하지 않는 별종은 경제적인 무능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는 나아가 정신적 무력증을 초래한다. *문화 산업은 이러한 시스템 밖에 있는 사람을 파산시키거나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인다.

204 *문화산업은 새로움을 배제한 새로움을 추구한다. 입증되지 않은 양식은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투기다. 따라서 그 안전성이 입증된 방식, 예로부터 성공이 보장되었던 '객관적인 정신'을 반복, 재생산한다. 

207 문화 산업의 특징인 '새롭게 하기'는 대량 복제의 개선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체계'의 핵심적 요소다.

208 유흥은 일의 연장이다. *사람들은 즐거움을 즐기기 위한 괴로움을 감당할 수 없다(노동으로 지쳐있기 때문에).  (...) 즐거움은 딱딱한 지루함이 되고 만다.  (...)정신적인 긴장을 요구하는 모든 논리적 연관은 교묘하게 기피된다. *작품의 구조에 대한 사유는 사고(=고통)를 필요로하기 때문에 기피된다.

212 문화 산업은 충동을 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억압한다. (성적 이미지의 노출로) 승화되지 않은 전희를 자극하지만 실제로는 성적 충동의 현실적 충족 불능을 습관화시킴으로써 결국에는 그러한 전희를 마조히스트적인 것으로 불구화한다.

213 섹스 상품의 범람은 자동적으로 섹스의 추방을 초래한다.

213 웃음이 시사하고 있는 것은 (...) '논리'의 올가미로부터의 해방이다. 

215 문화 산업은 자신이 행하는 기만이 욕구의 충족인 양 소비자를 설득하려 (...)

216 *문화 산업이 재미를 위해 삭제한 윤리나 취향상의 고려는 역설적으로 무제한의 재미를 삭제한다. 

219 즐긴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 고통을 목격할 때조차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 오락이 약속해주고 있는 해방이란 '부정성'을 의미하는 사유로부터의 해방이다.

224 *문화 산업의 '사실적 묘사'는 그 묘사의 대상이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이 사실의 세계로 승격시킨다. 

232 개인의 반항을 질식시킨 다음 백기를 든 개인들에게 항구적인 자비를 베푸는 통합의 기적은 바로 파시즘을 의미한다.

235 평균적인 것을 영웅화하려는 것은 싸구려에 대한 숭배의 일부분이다. 

237 예술의 자유란, 그 자체가 시장을 통해 관철되는 사회적 합목적성에 대한 부정으로서 근본적으로는 상품 경제의 전제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고유한 법칙을 좇음으로써 사회의 상품적 성격을 부정하는 순수한 예술 작품도 또한 상품이다.(...) 시민 예술에서 시장과 자율성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238 모든 것은 오직, 어떤 것이 어떤 것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측면, 즉 효용성의 측면에서만 인지된다. 

240 *예술 작품은 상품을 벗어나 팔릴 수 없는 상품이 되었다. 예를 들어, 라디오 청취는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데 이러한 형식은 라디오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한다. 

242 *예술을 향유하는 비용이 낮아지고 편해지면서 예술에 대한 존경도 사라진다

 

반유대주의적 요소들 : 계몽의 한계

252 (나치 독일하에서) 유대인들은 지배의 절대적 객체 상태에 떨어졌다.

254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박해가 다 그러하듯이, 그러한 왜곡된 질서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255 반유대주의의 토대는 (...) 평등주의다. 

255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이데올로기 자체를 얻었다. 분노의 표출에 대한 대중의 승인

258 인간의 권리라는 것에 담겨 있는 의미는 권력을 갖지 않은 자에게도 행복을 약속해주는 것이다.

260 시민적인 반유대주의는 '생산'에 내재해 있는 지배의 은폐라는 특수한 경제적 이유를 가지고 있다. *자본가의 '생산'은 노동 계약이나 경제 체계 일반의 착취적 본질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다. *이러한 경제적 불의에 대한 책임을 유대인이 짊어지게 된다.

261 착취에 대한 책임을 유통 부문이 떠맡는 것은 사회가 만드는 필연적 가상이다. *유대인은 사회적 차별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수단으로의 접근이 막혀있었으므로 유통업에 주로 종사하였음

262 *자본주의의 전파로 몰락하게 된 농민이나 수공업자는 그 전령인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키워갔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중앙권력에 의존하는 형태로 자신을 보호했는데 나치즘의 발호 앞에서는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264 *수천년의 기독교 문화에 뿌리내린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즉, 종교적 믿음은 사라졌으나 믿음에 동참하지 않는 자에 대한 증오는 유효하다. 

266 *예수를 신으로 칭하는 행위 자체가 주술을 자연적 존재가 아닌 정신적 존재로 바꾼다. 사유를 통해 믿을 수 없는 것을 사유속에 끌어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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